“뭐든 다 해준다” 귀빈 모시기 요지경
Write by limousine | Date 2011-01-28 09:52:14 | View 2958 | Download 0

“뭐든 다 해준다” 귀빈 모시기 요지경
-007작전 못잖은 의전서비스의 세계

지난 19일 미국 워싱턴 거리는 붉게 물들었다. 알렉산더 매퀸의 붉은 드레스를 입은 미셸 오바마의 미소가 환했다. 미국 대통령 부부가 후진타오 중국 주석을 유례없이 극진한 환대로 맞이했던 다음날. 인천공항에서는 붉은 넥타이의 남자가 이른 아침부터 중국 손님을 영접했다. 그가 맞이한 손님은 중국의 유명배우이자 가수인 주단(朱丹). 의전관광업체 코스모진의 장영우 과장은 넥타이를 단단히 고쳐 매며 말했다.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공항에서부터 시작되죠.”

주단(오른쪽 사진)이 탈 리무진 버스에는 샤넬 넘버5 향수가 뿌려졌다. 주단이 좋아하는 향수라서다. 버스 안에는 주단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후진타오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이 환하게 웃고 있는 중국 조간신문도 놓여 있었다. 버스 앞자리에는 꽃다발과 체류일정표도 준비됐다. 꽃다발을 받아안은 주단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 주단은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의 중국 리메이크판에서 장혁과 함께 주인공을 맡은 톱스타다. 한국관광공사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찾았다. 강원도 홍보대사인 그는 2박3일 동안 강원도와 서울을 돌며 정규앨범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의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브이아이피(VIP)의 캐릭터와 취향이다. 나라별, 나이별, 취향별로 식성이나 종교, 풍습 등 고객의 특성을 파악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슬람 국가 손님에겐 기도 시간에 동쪽으로 방향을 배려해주거나, 자동차 뒷자리에 앉기 싫어하는 중국인 손님에겐 운전석 옆자리를 비워주는 식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디지털포럼 등의 의전을 맡았던 의전업체 프리미엄패스 인터내셔널의 김응수 대표는 문화관습 숙지를 강조했다. “의전은 문화관습을 익힌 파트너가 되는 일이에요. 한국을 찾은 손님에게 홈그라운드에 있는 듯 편안하게 해주고, 품위유지를 돕는 거죠.”

의전컨설턴트의 일은 ‘007작전’ 못지않다. ‘고객(초청기업)의 고객(VIP)을 모시는 일’이다 보니 고충도 두 배다. 로버트 굴드(노벨평화상 수상), 표도르(이종격투기 선수), 우디 앨런(영화감독) 등의 방한 의전을 담당했던 코스모진 정명진 대표는 “외국의 브이아이피는 생수까지 특별한 것을 원하는 등 종종 까다로운 요구를 하지만 가능하면 최대한 수용한다”고 했다.

한 의전업체는 외국 업체로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국빈급 손님을 모셔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알고 보니 한 국가 정상의 막내아들이었다. 말썽쟁이로 소문난 그를 위해 의전컨설턴트는 입국 하루 전 가까스로 한 호텔의 최고급 스위트룸을 예약했다. 예상대로 그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든다며 호텔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시간은 밤 10시.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평소 쌓아둔 인맥 덕에 겨우 다른 호텔로 옮겼다. 정상의 아들은 낮에는 방에 칩거하고 늦은 밤에나 움직였다. 시간 약속 안 지키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밤 문화 체험을 원하는 그를 데리고 클럽에 갔다. 그는 ‘부킹’ 을 원했고 의전요원은 영어가 되는 여성을 찾아 밤새 테이블을 돌았다.


고객의 고객을 모시는 일, 고충은 두배
의전의 세계에 유별난 일은 흔하디흔하다. 예컨대 대기업 초청 바이어들에게 경쟁업체의 건물이나 제품이 눈에 띄지 않게 하는 일이다. 삼성전자 바이어는 서울 여의도를, 엘지전자 바이어는 삼성동을 모르고 서울을 떠난다. 여의도엔 엘지 쌍둥이빌딩이, 삼성동엔 삼성전자 홍보관이 있다. 바이어가 묵는 호텔방에는 초청기업 상품으로 전자제품과 생필품이 모두 갈아채워지기도 한다. 낚시를 좋아하는 바이어의 기분을 띄우기 위해 물고기 유도장치를 쓰는 방법도 동원되곤 한다.

브이아이피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프라다 회장 부부가 세관 입국심사에 걸려 의전요원이 애를 먹은 일도 있다. 2009년 서울 경희궁에서 프라다의 트랜스포머 행사가 열렸을 때다. 파트리치오 베르텔리 프라다 회장과 그의 부인이자 디자이너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가방 한가득 들어 있는 프라다 제품 때문에 세관의 의심을 샀다. 의전요원이 땀 뻘뻘 흘려가며 설명한 뒤에야 겨우 풀려났다.

직업군에 따라 다른 선호 관광지도 의전 때 고려해야 할 중요 포인트다. 할리우드 스타들은 서울 홍대나 삼청동의 숨겨진 뒷골목에 호기심이 많고, 세계적 부호들은 강남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해보고 싶어한다. 기업인들은 당연히 산업현장 시찰을 선호한다.

판문점 관광 땐 입장서류 때문에 곤욕을 겪은 의전컨설턴트도 있다. 동남아시아 쪽 손님이 세계 유일의 이념 대치 현장을 보기 원했고, 의전업체는 남녀 한명씩 들어간다는 요청을 받아 관련 서류를 준비했다. 그런데 맙소사. 도착한 이는 여자 둘이었다. 그새 한 명이 성전환 수술을 했던 것. 동남아 쪽 손님들의 경우 이런 일이 왕왕 생겨 그 뒤 고객 리스트의 성별 체크 때 특이사항까지 꼼꼼하게 체크하도록 의전업체는 규정을 바꿨다.


몰래 찾아온 VIP 경호의전 준비 더 철저
주로 영화배우의 경호의전을 수행해온 에이티에스에스(ATSS)도 그간 여러 스타들을 모시며 별별 일을 다 겪었다. 자기관리가 철저한 할리우드 스타 휴 잭먼은 때맞춰 건강보조식인 특식을 챙겨야 했고, 소탈한 청룽(성룡)은 팬들과 가까이하려 해 경호하는 데 애를 먹었다. 유난히 깔끔했던 한 할리우드 스타는 어디를 가든 손소독제를 신경질적으로 찾았다. 스위트룸 안에서 운동을 하겠다며 운동기구를 요구하는 스타도 있었다.

몰래 들어오는 스타에겐 비공식 방문에 맞는 비공식 의전도 필요하다. 최근 방한한 한 유명배우는 공식적으로는 한국을 처음 방문했지만 이미 한차례 몰래 찾아온 적이 있다. 비공식 의전은 드러내지 않고 경호를 하다 보니 공식 의전보다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검은 정장 대신 일상복을 입고 인원도 최소화해 눈에 띄지 않는 경호를 한다. 경계대상 1호는 스타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경호의전을 맡으면 준비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에이티에스에스의 함상욱 실장은 “브이아이피의 안전을 위해 소지하는 무전기, 호신장비 등 몸에 걸치는 장비만 600만~700만원어치 정도”라고 했다.

최근 의전은 더욱 차별화하고 있다. 프리미엄패스 인터내셔널의 김응수 대표는 “과거와 달리 의전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점차 차별화된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시간을 초 단위로 쓰는 금융인들은 스피드 의전이 필수다. 세계 주요도시를 일일생활권으로 생활하는 유명 펀드매니저들은 리무진 서비스만 요청해 운전기사와 함께 하루 스케줄을 소화하고 한국을 떠난다. 리무진 운전사는 운전만 하는 게 아니라 인천공항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가이드와 비서를 겸한다. 그러다 보면 평생 못 만나는 게 당연할 법한 유명인과 클럽에서 친구처럼 어울리는 일도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의전업체 세분화…관광·경호·VIP전문
한국을 찾는 외국인 손님은 느는 추세다. 이달만 해도 폴 포츠(가수), 히사이시 조(영화음악가), 궁리, 우에노 주리, 주걸륜(이상 배우), 미셸 공드리(영화감독) 등 수많은 ‘별’이 한국을 찾았다. 국제행사가 많아지면서 기업인과 정치인의 방한도 늘었다. 지난해 한·중·일 정상회의, G20 정상회의, 포뮬러원(F1)대회에 이어 올해는 평창겨울올림픽 실사단 방한, 한·중·일 관광장관회의 등이 준비중이다.

흔히 의전이라고 하면 레드카펫, 의장대, 예포, 카퍼레이드가 먼저 떠오른다. 떠들썩한 국가의전에 꼭 끼는 요소다. 그러나 의전은 우리 눈높이에도 있다. 비즈니스 바이어들의 방한 때 호텔예약·공항의전·수행·통역·관광일정을 돌봐주는 서비스에서 항공사나 금융권에서 우수고객을 위해 제공하는 컨시어지(비서) 서비스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의전업체도 세분화돼 있다. 비즈니스 일정 중 관광을 수반하는 관광의전업체, 유명인 방한 때 경호를 책임지는 경호의전업체, 리무진 서비스와 각종 국제행사를 돕는 브이아이피 전문 의전업체 등이다.

의전컨설턴트들은 국가 의전을 담당하는 외교통상부와 청와대 의전실의 담당관처럼 외국어 실력과 국제매너, 관광지식 등이 필수 요건이다. 여기에 쇼맨십과 서비스 정신, 순발력, 인적 네트워크까지 갖추고 있다면 ‘플러스 알파’를 충족한 셈이 된다.

의전은 ‘제3의 협상지대’라고 불린다. 전략적으로 손님을 얼마나 잘 대접했느냐에 따라 협상의 결과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은 성대한 의전으로 중국의 지갑을 열었다. 일반 기업들도 다르지 않다. “1억원 수주를 앞두고 1박2일 의전에 들이는 돈이 아깝지 않은 게 요즘 기업”이라고 코스모진의 장영우 과장은 전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출처: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