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 마케팅의 진화]문화·예술 결합…2세 공략 마케팅도 - 상위 1%를 위한 ‘전쟁’
Write by limousine | Date 2008-10-24 17:12:09 | View 3713 | Download 239

문화·예술 결합…2세 공략 마케팅도

상위 1%를 위한 ‘전쟁’



지난 1월 24일 저녁, 영업을 끝낸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영화에나 나올법한 별세계가 펼쳐졌다. 본관 전체가 다시 환하게 불을 밝히고 각층에서는 저마다 특색 있는 이벤트가 진행됐다. 남성 브랜드가 모여 있는 지하 1층에는 카지노 룰렛 테이블이 차려지고 시계 코너에서는 해외 명품 시계 브랜드의 신제품과 시계 관리법을 알려주는 ‘시계 클래스’가 마련됐다.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의 공연과 마술쇼도 눈길을 끌었다. 백화점 측이 엄선해 초청한 700명의 VIP 고객들이 그 사이에서 최고급 샴페인을 즐기며 흥겨운 파티 분위기 속에서 쇼핑을 즐겼다.

신세계와 함께 이 행사를 기획한 오피스에이치의 고승희 팀장은 “웬만한 제품이나 브랜드는 다른 백화점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며 “구매력이 높은 ‘1%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들의 코드에 맞는 파티 요소를 결합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는 2년 전부터 백화점 업계에 도입된 ‘나이트 쇼핑’에 놀이 문화를 더한 새로운 시도로 ‘갈라 쇼핑’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신세계 마케팅팀 이승희 과장은 “이날 신세계 본점 그랜드 오픈 이후 최대 매출 기록을 세웠다”고 말했다. 이런 성과에 고무돼 신세계는 ‘갈라 쇼핑’ 행사를 분기별로 1회씩 개최하기로 했다.

귀족 마케팅 전업종 확산

백화점 업계에서 귀족 마케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할인점 등 경쟁 업태의 급성장으로 고급화에서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 업체들은 상위 1%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매출을 올려야 하지만 촌스럽거나 강압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세련되게 접근해야 한다. 백화점들이 소수 부유층의 문화적 코드와 라이프스타일 연구에 몰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귀족 마케팅 열풍은 비단 백화점 업계만의 현상은 아니다. 과거 백화점이나 프라이빗뱅킹(PB), 수입 자동차 등 특정 분야에 한정됐던 귀족 마케팅은 이제 거의 전 업종으로 확산되고 있다. 병원은 물론 자치단체, 농산물까지 소수 고객만을 위한 ‘명품’임을 내세운다. 최근 40억 원이 넘는 초고가 분양가로 화제를 모은 대림건설과 한화건설의 뚝섬 아파트의 경우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연예인 등 극소수 고객을 선별해 일대일 마케팅을 전개했다. 프로야구구단인 두산베어스도 ‘VIP 회원’을 모집 중이다. 회원이 되면 잠실야구장 중앙 지정석에 자신만의 자리를 마련해 1년 내내 자유롭게 야구를 즐길 수 있고 야구장 중앙문에 마련된 회원 전용 출입구를 통해 바로 입장할 수 있다.

이처럼 귀족 마케팅이 ‘대중화’되면서 ‘최고 중의 최고’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제 웬만한 서비스로는 관심조차 끌기 어렵다. 이에 따라 업체들은 중상류층에서 최상류층으로 타깃을 올려 잡고 차별화된 서비스 개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프리미엄패스는 ‘대한민국 1%’의 숨은 욕구를 찾아내 성공한 사례다. 이 업체는 국내외 36개 주요 공항에서 프리미엄 의전 서비스를 제공한다. 김응수 프리미엄패스 사장은 “대기업 임원들도 유독 공항만 가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며 “골프 여행을 가도 골프가방 등 무거운 짐을 직접 들고 북새통 같은 입국 수속장을 헤매며 진땀을 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전문 의전 요원을 두고 입출국 수속, 수하물 처리는 물론 주차까지 모두 처리해 준다.

차별화된 서비스를 찾던 금융 회사들이 프리미엄패스의 서비스 활용에 가장 적극적이다. 김 사장은 “지난해만 해도 시기상조라는 반응을 보인 곳이 많았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전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PB 고객에게 이 업체를 통해 공항 의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한카드도 기업 블루버드 회원을 대상으로 이 서비스를 도입했다.

네트워크 호스트 역할 나서

자동차 업계에서는 잡지를 귀족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벤츠 BMW 도요타 혼다 GM 등 대부분의 수입 브랜드들이 자사 고객을 위한 잡지를 발행 중이며 현대차도 지난해 오피러스와 제네시스 잡지를 창간했다. 기아차도 야심작인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하비의 잡지 발행을 검토 중이다. 이들 잡지는 기존 구매 고객과 구매 예상 고객 등 한정된 소수 독자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BMW 관계자는 “VIP 고객에 다가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라이프스타일로 접근하는 것”이라며 “신제품과 첨단 기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소개와 흥미로운 인터뷰, 스토리를 함께 싣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PB 고객 2세’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고객 자녀 모임인 ‘SPS 클럽’을 결성해 요트 체험 행사와 재테크 교육, 성공학 등 각종 교양 문화 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PB 고객 자녀들을 서로 소개해 주는 커플 매칭 행사도 열고 있으며 PB센터마다 골프 동호회를 조직해 자선 골프 대회를 열거나 프로골퍼에게 강습도 받는다. SC제일은행은 惻??PB 고객의 자녀 30명을 선발해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PB센터에서 근무하는 PB들의 강의를 직접 듣고 SCB 홍콩 PB센터와 UBS 등 유수 금융회사를 직접 방문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VIP 초청 행사의 큰 틀은 대부분 비슷하다. 호텔에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이벤트를 관람한 다음 선물을 증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서비스의 ‘퀄리티’는 계속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술을 내놓아도 최고의 술을 준비하고 음식도 최고의 셰프가 조리한 특별한 음식을 최고의 식기에 담아 내놓는다. VIP 마케팅 업체 관계자는 “남들도 하는 비슷비슷한 서비스로는 더 이상 고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최상위 고객들 간의 네트워크 구축도 성공의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제품을 앞세우기보다 ‘1% 고객’ 간의 네트워크 호스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트워크가 없다면 상업적 목적이 밑바닥에 숨어 있는 행사에 굳이 참여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최상위 고객을 끌어들이는 힘은 바로 이들의 문화적 코드와 라이프스타일을 얼마나 잘 읽어 내느냐로 판가름 난다.

인터뷰│한동철 서울여대 교수

‘부자 되려면 부자 대상 비즈니스를 하라’


한동철 서울여대 교수는 미국 세인트루이스대에서 부자 마케팅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국내 ‘부자학 박사 1호’다. 지난해 출범한 부자학연구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기업들의 귀족 마케팅에 대해서도 다양한 조언을 해 주고 있다. 한 교수는 “부자가 되고 싶다면 부자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반인을 상대로 한 ‘매스 마케팅’의 시대는 끝났나.
일반인을 상대로 한 마케팅은 국민소득 1만 달러 이하일 때 적합한 방식이다. 물론 매스 마케팅은 그 자체로 계속 시장을 갖고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대중들이 지향하는 것 자체가 바뀌었다. 대중들도 부자를 지향한다. 그래서 귀족 마케팅의 파급 효과가 큰 것이다.

귀족 마케팅의 강점은.
귀족 마케팅은 경기를 타지 않는다. 부자들은 경기가 나쁠 때도 돈을 번다. 부자들의 소득 증가 속도는 일반인보다 2~3배 빠르다. 그들이 가진 부의 절대 규모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고수익을 노리는 기업들이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귀족 마케팅의 어려움은.
우선 부자에 대한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데이터베이스 구축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은행과 증권사를 통해 접근하는 게 일반적이다. 귀족 마케팅은 성공 확률도 아주 낮다. 10번 접촉해서 자기 고객으로 만들 수 있는 확률이 10% 미만이다. 하지만 일단 성공하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국내 업체들의 문제점은.
아직도 고객이 아니라 기업 중심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자들은 자신들이 쓴 만큼 대접 받길 원한다. 그런데 내부 룰 때문에 그런 욕구를 따라가지 못한다. 한 증권사 PB센터가 700만 원짜리 소파를 샀는데 고객들은 좋아하는데 본사에서 감사를 나왔다고 한다.

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

입력일시 : 2008년 4월 1일 10시 35분 35초